정작 흥미로운 점은 다른 데 있었으니.
같은 시기에 맞은편 기획전시실에는 <중국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 5년마다 개최되어 중국 본토의 정통 회화의 맥을 잇고 있는 <전국미술전람회>의 주요수상작들의 전시였다. 우리로 치면, <대한민국 미술대전>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까.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중국의 전통 미감을 적절히 융합하는 스타일의 작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이는 두 미술형식이 회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셈이다.
<플럭서스>전시를 보고 허탈감에 떨며 맞은편 전시실로 들어간 관객들이 이번에는 어김없이 대단한 포만감을 보이며 전시실을 나선다. 첫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어휴 이제 좀 '그림 같은' 그림을 보누만." 그도 그럴 것이, <중국현대미술>전에 전시된 그림들은 여기 소개한 왕훙잔의 <양관삼첩>처럼 빼어나게 잘 그린 대작들이었다. 그 주제 역시 객지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는 서민들의 애환을 다루고 있으니, 참으로 작가가 우리 민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등시춘의 <돌아옴> 역시 수채화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수채화라 믿기 힘들 정도의 깊이 있는 농담과 세부묘사를 과시하고 있다. 견고한 구성력과 목가적인 소재와의 결합 역시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데 손색이 없다. 실제로 120여 점의 출품작들 대부분이 회화를 전공한 나조차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테크닉을 과시하고 있었다. 암. 모름지기 그림쟁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가운데 회랑에 앉아 양 전시장 입구를 번갈아 보고 있던 내게 문득 이렇게 반대편 극단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예술이 정작 추구하는 목적지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들 모두가 예술을 민중에게 돌려주고 민중과 호흡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려는, 거칠게 표현해서 “예술의 민주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이념을 생각하든 작업방식을 생각하든 중국의 리얼리즘 미술이 민중에 지향을 두고 있다는 점이야 자명하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그러면, 일견할 때 민중의 눈높이를 고려하기는커녕 민중을 무시하고 심지어 조롱하고 있는 느낌까지 주는 “플럭서스” 역시 “예술의 민주화”를 염원하고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명작이라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도 잘 그렸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수순지니...
하지만 한가지 이상한 것은 이런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성이 있는 그림만으로는 기억에 오래 자리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백남준씨의 이상한 행동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근데 저 그림의 586의 상징성이 재미있군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