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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방

실크로드, 티벳 여행기
2003.08.07 09:06

시간이 멈춰선 창탕고원

(*.77.15.29) 조회 수 1462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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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9일 (여행 17일째)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은 커녕 양말도 벗지않고 자고 있다. 속은 많이 편해졌는데 기운은 별로 없다. 고도계는 3555미터를 가르키고 있다. 일행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침식사를 권하는데 별로 생각이 없다. 어제 밤 몽땅 토해내고 그나마 속이 좀 편해졌는데 음식을 먹는 것은 별로 자신이 없다. 맛없는 중국산 콜라로 속을 달래고 차에 올랐다.

마당에 가득찼던 트럭들은 아침에 한대로 남지않고 벌써 출발하고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는 자갈밭과 멀리 눈덮인 산봉우리들 뿐이다. 덜렁 가건물 몇채만 놓여있고 가건물마다 간판이 하나씩 붙어있을 뿐이다.

어제보다는 조금 날씨가 나아졌지만 쌀쌀하기는 마찬가지다. 열심히 고도계를 들여다보지만 고소증때문에 눈이 침침해서 숫자 식별이 잘 되지않는다. 창밖은 내다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풍경의 연속이다. 언제쯤 알리에 도착하게 될것인가와 오늘 저녁 숙소의 고도가 얼마나 될까만이 관심사일뿐이다. 고소증에서 낮에 활동하는 고도보다는 저녁에 잠을 자는 고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낮에는 좀 높은 고도에 노출되더라도 밤에 3000미터 이하의 고도에서 잠을 자게되면 고소증을 예방할 수 있다.

운전을 하는 쿠디라트는 전형적인 위구르족으로 영어는 거의 하지못하는데 바디랭귀지가 능통해서 의사소통에는 별 지장이 없다. 한참을 달리다가 손가락질을 하는데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기념탑같은 것이 하나 서있다. 인도와의 국경분쟁때 사망한 중국군인들의 위령탑이라고 한다. 그런데 쿠디라트는 재미있는 내용을 두가지 이야기 해준다. 첫번째는 사망한 중국군인 전부다 위구르족 전사였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인도군과의 분쟁때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고 교통사고로 집단사망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정부에서는 중국군인이 인도와의 국경분쟁으로 사망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누가 들어도 중국한족 군인이 인도군의 총격에 의해서 사망한 것으로 생각할테니...

사실 이날 지나온 길이나 지형지물에 대한 기억은 머리속에 거의 남아있지를 않다. 고소증때문에 가물가물한 기억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고도계의 수치만이 5000미터, 4700미터, 다시 5300미터로 바뀌었을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속때문에 물한모금 마시지 못했다. 소변을 본 기억도 전혀 없다. 가끔 맥박을 재보니 120회 가까이 된다. 평소에 80회가 채 되지않는 맥박이 조깅하는 수준까지 뛰고 있으니 조금은 불안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예챙출발전부터 고소증예방을 위해서 다이아목스를 먹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먹을 수가 없다. 물한모금만 마셔도 구토를 해대니 차라리 아무것도 먹지않는 것이 속이 편하다. 그저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서 슬리핑백을 뒤집어쓰고 그저 죽은듯히 앉아있었을 뿐이다. 오늘밤에는 3000미터 이하로 내려가서 자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고도가 낮아지기는 커녕 점점 높아지더니 5000미터 고개를 통과한다. 쿠디라트는 운전을 하면서도 여전히 머리를 두드렸고 훌리오와 다께스는 여전히 두통에 시달렸다. 마지막까지 아무 문제가 없을듯했던 크리스천도 달리는 차를 세우게하고는 갓길에다가 흠뻑 구토를 해댔다. 어제는 내가 제일 약하다며 놀려대길레 어른한테 그러는 게 아니라고 충고주었었다. 다케스가 제일 젊어서 삼십대 초반이고 훌리오와 크리스천이 서른여섯살... 나만 40대이고 그것도 40대후반이고 50에 더 가깝다.
- 너는 고소증이 절대 안생긴다며???
- 고소증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아까 먹은 음식이 상했나보다.
고소증때문에 죽은듯이 말한마디 없이 꼼짝도 하지않다가 크리스천을 놀려대니 다른 일행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크리스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고소증때문이 아니고 아까 먹은 음식이 상해서 그런 것같다고 둘러댄다. 채식주의자랍시고 생과일과 말린 과일만 먹는 사람이 상한 음식을 먹었을리가 있나??

중간에 잠깐 점심을 먹기 위해 4700미터 고도에 달랑 천막하나 세워진 간이식당에 잠시 멈춰섰지만 나는 그냥 차에 누워있었다. 죽은듯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 랜드크루저는 신장티벳하이웨이에서 가장 고도가 높다는 5300미터 고개(Jitai Daban pass : 界山大板)에 도착했다. 잠깐 차를 세우고 각자 볼일을 보는데 아무도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그저 느릿느릿 자기 볼일만 보고 묵묵히 차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는다. 훨씬 나중에 깨달았지만 티벳에서는 사람이 뛰는 모습은 좀처럼 구경할 수없다. 그저 느릿느릿 슬로우비디오처럼 움직인다. 산소가 희박한 고소에서 적응한 탓일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길을 몇날며칠을 걸어서 넘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달리다가 프랑스번호판이 붙어있는 캠핑카를 하나 만났다. 멀지않은 곳에 두명의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이 오지를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종의 신선놀음이다. 캠핑카에 먹을것에 침대까지 실어나르니...

그렇게 몇시간을 또 앉아서 버텼다. 한참을 달려도 고도는 도무지 낮아지지를 않는다. 좀 낮아지는가 하면 4500미터, 조금 올라가는가하면 4800미터.. 아무리봐도 오늘밤 숙소가 3000이하로 낮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인다. 이미 평균고도 4500미터가 넘는 고원평야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밤 자고가야한다는 숙소에 도착했지만 고도계는 여전히 4300미터를 가르키고 있다. 씻기는 커녕 물한모금 못마시고 그냥 침구속으로 쓰러져들어갔다. 이대로 자고 싶다. 다만 내일 아침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날 수 있을까?

쿠디라트가 약이라며 가져온 앰플은 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포도당 앰플이다. 이쪽 사람들에게는 고소증에 특효약이란다. 가져온 사람 성의때문에 할 수 없이 하나 따서 마시고 누웠다. 어제아침 예챙의 고도가 1300미터이니 이틀사이에 3000미터나 고도를 높였다. 하루에 500미터정도씩 고도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한데 세배나 빨리 올라온 것이다. 그러니 고소증이 안생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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