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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방

2001.07.13 21:26

[re]뮌헨의 몽마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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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있는 뮌헨 북부의 한 구는 슈바빙이라고 불리워지는 독특한 지대다.
슈바빙이라는 단어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파리의 몽마르트나 쌩 제르맹 데 쁘레와 마찬가지로 한 개념이 되어 있다. 이 지대의 역사도 굉장히 오래되어 있어서 20세기에 어떤 일족이 이동해 와 정착한 것에서 출발하여 점점 발전하고 확장되어서 결국은 뮌헨이라는 대도시가 생겨났다고 한다. 따라서 슈바빙은 뮌헨의 헥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슈바빙을 유명하게 만들고 독일의 다른 도시 또는 도대체 독일적인 것과 구별하고 있는 것은 그 오랜 역사 때문이 아니라 특유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독특한 맛― '슈바빙적'이라는 말 속에 총괄되는 자유, 청춘, 모험, 천재, 예술, 사랑, 기지......등이 합친 맛으로서 옛날의 몽마르트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자기의 맛을 가진 정신적 풍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차 대전 후의 몽마르트르나 이차 대전 후의 생 제르맹 데 쁠레에 일말의 우수(독일의 로만티스무스의 안개)와 게르만의 무거 운 악센트를 붙인 곳이라고나 할까?

  슈바빙의 주요 도로인, 거대한 포플러 가로수로 장식되어 있는 아름다운 레오폴드 가를 따라 올라가면 평범한 셀러리맨과 중산 계급 주부들에 섞인 슈바빙 가(슈바빙 족)들을 볼 수가 있다. 도로에 의자와 테이블을 내놓은 테라스 카페 에 앉은, 보들레르 식으로 머리를 기르고 '실재주의자 수염(반 고흐 식 수염으로, 화가 수염이라고도 한다)을 기른 검은 스웨터에 검정골덴 바지를 입은 청 년과 마리나 블라디 또는 브리짓드 바르도 식 머리를 한, 화장은 안하고 눈가 만을 검게 그리고 끝을 올린 소녀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 잔의 커피 또는 아 무것도 안 마시고 담배만을 연거푸 피우면서 몇 시간이라도 그들은 토론하고 있다. 그들의 화제는 몹시 시대 정신과 저널리즘에 민감한 것을 나타내고 있으나 특별한 것은 없다. 예를 들면 영화와 축음기판, 줄리엣타 마시나와 하이 데거, 라이오 넬 헴튼과 석간 신문, 시, 시계, 건축, 연애, 강의 노트, 소련의 로켓...... 등이 화제다. 그러나 슈바빙적인 것은 어떤 얘기 속에도 얘기 그 자체가 아니라 행간에 놓여 있다. 말해지지 않은 속에 억제된 감동, 욕망, 기대가 스며 있다. 돈, 시간표, 소시민 근성, 인습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그들로부터 자유로움의 의식이 어떤 화제 사이에도 그들을 침묵 속에 굳게 맺어서 일종의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테마는 예술이다. 어디선지 모르게 그림이 그려지고 있고, 조각을 쪼고 있고, 시가 쓰여지고 있는 곳. 감수성 있는 사람들이 젊었을 때 누구나 가질 청춘과 보헴과 천재의 꿈을 일상사로서 생활하고 있는 곳, 위보다는 두뇌가, 환상이 우선하는 곳, 이런 곳이 슈바빙인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는 슈바빙의 주민들(대부분이 학생, 화가, 배우, 음악, 기자, 시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에게서 나올 뿐만 아니라 슈바빙을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원인인 수많은 음식점과 댄스홀에서도 풍기고 있다.
  즉, 한 잔의 맥주와 한 접시의 수프로 저녁을 대신하고 몇 시간씩 난로를 쬐고 트럼프나 하모니카로 놀기까지 하는 학생들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 무관심한 음식점, 한 잔의 맥주로 몇 시간 동안이라도 춤출 수 있는, 초 피카소적 장식을 벽에 막 그린, 학생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촛불 몇 개만 켜 놓은 어두운 댄스 홀, 흑인 학생들 사이에서 조금도 주저를 안 느끼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사랑할 수 있는 유일의 장소, 이것들이 슈바빙의 특성이다. 어떤 외국 사람에게도 정신적 고향만을 같이 한다면 지리적 고향은 의식하지 않게 해주고 잊게 만드는 곳이 슈바빙인 것 같다.

  그들이 모여서 가끔 여는 그림 전람회에 '노아의 방주'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폭격 맞은 페허 속에 유지된 단 하나의 방으로서 천정은 머리가 닿게 얕고 어둡다. 그 속에 놀라운 요한한 색채와 기상 천외한 착상의 그림자들이 마치 옛날 다다이즘의 한창 때처럼 소심한 시민들을 질색시키기 위한 듯이 진열되고 있다. 그림 밑에는 전부 값이 적혀 있지만 한개도 붉은 종이가 안 붙은 것도 무리가 아니게 보였다. 꿈에 나올것 같은 인물화, 식욕이 없어질 것 같은 정물, 신경 쇠약에 걸릴 것같이 강열한 요란한 색채의 그림들은 '노아의 방주 ' 이외의 다른 집을 찾아 가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다.

  슈바빙의 또하나의 명물로서 영화 연구소라는 아주 작은, 의자도 딱딱하고 나쁜 쓰러져가는 영화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현대의 영화 기술 시네마스코프, 톳드AO...... 등을 마이 동풍으로 언제나 작은 화면에 흑백으로 최하의 값과 학생 할인으로 그러나 최고의 영화를 보여준다. 채플린 한창 시절의 영화, 그레타 가르보의 다시없는 미모, 디트릿히의 젊은 발, 바리, 모아형제, 독일이 낳은 최고 배우 에밀 야닝스의 불후의 연기, 콘라트 화이트, 폴라 네그리아스타 닐센...... 등의 무성영화에서부터, 무성영화에서 토키로 옮겨가는 경계선의 명화를 원어 녹음과 독일어 자막으로(다른 영화관에서는 다 독일어 녹음이다)다른 영화관을 한 바퀴 다 돌고난 후에 얻어다가 보여준다.

  하여간 슈바빙은 이 무서운 날카로움으로 발전해 가는 기계 문명 속에 아직도 한 군데 남아 있는 낭만과 꿈과 자유의 여지가 있는 지대, 말하자면 시계 바늘과 함께 뮤즈의 미소도 발을 멈추고 얼어붙어 버린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슈바빙은, 전독일에서 전구라파와 미국에서 재능 있고 환상에 넘친 모범적인 젊은 이들을 끌어오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리하여 특수한 풍토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젊은 토마스 만, 야콥 왓싸만, 웨데킨트, 스테판 게오르게...... 들을 뮌헨에 끌었던 것도 이 슈바빙적인것 때문이라고 한다.
이 풍토는 그 속에 한번 들어가서 그것을 숨쉬고 그것에 익고나면 다른 풍토는 권태롭고 위선적이고 딱딱하고 숨막혀서 도저히 못참게 되는 곳인 것 같다.

  이 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 대신에 어떤 로맨틱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며 면밀한 계산과 부지런한 노력 대신에 무료로 인류를 구제할 계획이 심각히 토론된다.
  물론 이 형형색색의 슈바빙 족속은 근본적으로 보아서 한 오해 또는 참된 예술의 어떤 캐리커쳐일 것이다. 그러나 사무실과 공장과 스케줄과 실험실 속에서 6일과 8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에게 특이한 것에의 예감, 자유의 향기 같은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이 종종 기괴한 이방인들, 삐에로, 방랑인, 집시 등인 것처럼, 슈바빙가의 무위와 허영과 천재연한 태도 속에서도 거부할 수 없이 풍기며 평상인에게도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자유'인 것 같다. 그들의 속과 주위에는 무제한한 자유가 있다. 무위에의 자유, 천재적 착상과 인스피레이션에의 자유, 그리고 돈과 기차 시간표, 착한 시민근성, 인습과 타협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슈바빙 가는 아마 마지막의 개인주의자이며 생활 예술가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얘기만 하고 있는 '정신의 자유'를 그들은 맨 주먹으로 감행해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슈바빙적 정신은 결국은 일반적인, 뮌헨적인 것을 특별히 보다 모험적으로 동요되고 지성적으로 날카로와진 형태 속에 압축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뮌헨의 공기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이러한 슈바빙적 냄새가 떠 있다간 어떤 기회에 돌연 괴이한 플래카드 그림, 또는 사육제나 시월제(맥주제) 속에서 분출되는 것 같다.
  슈바빙은 한마디로 청춘의 축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회생도 적지 않게 바쳐지는, 그러나 젊은 목숨이 황금빛 술처럼 잔에 넘쳐 흐르고 있는 꿈의 마을, 이것이 슈바빙이 아닐까?

  본질을 파악,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신선한 바다 바람 같은 자유의 냄새로 사람을 매혹하고 마는 곳, 학생 시절을 슈바빙에서 보내고 일생동안 그 추억을 잊지 못한 토마스 울프가 "뮌헨을 말하려거든 '뮌헨은 독일의 하늘(천국)' 이라는 말을 빼놓지 말아라."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일 것이다.
끝으로 온갖 것이 합리와 이성으로 처리되는 독일에 빌고 싶은 것은 '슈바빙과 함께 보헴의 정신이여! 길이 살아라.'

>                                                                     전 혜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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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宋梅 2001.07.14 11:16
    전혜린씨 글은 학생시절부터 몇번을 읽었지만 많이 생각하며 읽어야하는 글같습니다. 제목만보고 몽마르뜨가 뮌헨으로 이사갔나 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이런 개인주의적 예술이 서구적이고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한국적 생활속에서 쉽게 동화되지는 않는 것같든데... 저도 나이를 먹은 탓인가요? 선배님들 앞에서 주제넘게 나이타령이라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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