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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방

2001.07.13 09:45

[re] 산다는것...

조회 수 805 추천 수 0 댓글 7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애들뿐이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슨
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지낸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
그러치만 집착이 과연 그리 나쁜걸까요??
  • ?
    모순미 2001.07.13 10:10
    블루님 글을 읽으니 우리 일문 스님 생각이 납니다. 여름이면 숲속 그늘밑에 놓인 난초들을 바라보다 저녁에서야 산그늘을 지고 내려 오시던 그분. 어느날 홀연히 모든것을 두고 가버린 그분. 달빛아래 훌라후프를 돌리던 그분.
  • ?
    宋梅 2001.07.13 10:38
    다래헌과 스카이블루라.... 스카이블루라는 ID에서 상당히 동적이고 조금은 젊은분을 연상했는데 막상 글을 접하고 보니 다분히 정적이고 불교적인 냄새가 나는군요. 어떤분일까 궁금해지는군요...
  • ?
    스카이블루 2001.07.13 10:39
    에궁..출처를 밝혔어야했는데..윗글은 법정스님의 무소유중의 한켠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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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미 2001.07.13 10:45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글. 다래헌이 포인트
  • ?
    은파 2001.07.13 11:18
    역시 들구콰님 .... 읽으면서 법정스님과 같다 어 이상한데 스카이님...역시 제가 좋아하는 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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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한 2001.07.13 19:03
    이런~~~~이미 무소유~를 읽어봤는데 첨 읽는거같이 바라봤으니...쩝~
  • ?
    조영식 2001.07.14 09:29
    오늘도 절과 스님이라...아니, 스님과 문학(?)이로군요...'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성철스님)---'난은 난이고, 사람은 사람이로다' (초이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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