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그러니까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우리고향 전남 장흥 관산을 다녀왔습니다.
아마 10년인지 20년인지 ...
오랫만에 고향가는 길이 가슴이 벅찼었습니다.
사촌 형집에 가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붙어다니던 단짝을 불렀습니다.
야 나다
나가 누구여?
나여 오랫만이네 얼굴이라도 보고싶어서
잉 너여!! 아따 먼일이다냐?
고향생각이 나서 왔어
어디냐?
여기 **형네 이리와
그려 지금 가께
그러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제 주름살도 좀 생겼지만 젊어서 아가씨들을 많이 울린 그 친구는 여전히 미남이었습니다.
아따 오랫만이다. 통 소식도 없더니 그동안 어츠케 살었냐?
나아? 객지에 나가 벌어먹고 살랑께 정신없이 살았제.너는 살만한가보다 아즉 팽팽하네.
고향에서 부모 모시고 살고, 소 키운게 가격도 올라서 갠찮어 좋은 음식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도시 사는 것 안부러워
그라겄다. 나는 할아버지 됐다. 우리 딸이 시집가서 한 3년됐어 니 아그들은 어짜냐?
이잉 한 놈은 군대가고 딸은 인제 취직혀서 광주살어.
잘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그렇게 보고싶던 친구를 만났는디 이 왠수 말주변이 없어 먼 말을 해야 할지 생각도 안나드만요.
오랫만에 왔드니 마니 변했다. 해변으로 도로도 생기고, 집집마다 차들도 좋고 나도 시골에서 살걸 어쩌다 서울에서 시달리는지 모르겄다. 나 읍에 동상 집으로 갔다가 낼은 또 올라간다. 잘 있어라잉. 서울오면 꼭 연락허고...........
그래 잘 가그라.
그러고는 또 얼마가 될지 모를 이별을 했습니다.
전화라도 가끔 해야지. 카드라도 보내야지 하다가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또 시간이 흐르고 1년 2년이 지나면 다시 서먹해질까 걱정도 됩니다.
내 고향 관산 몸은 멀리 있어도 항상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리운 고향입니다.
친구야 보고싶다.
오늘따라 왜 너가 더 보고싶구나.
그 녀석 모친상 당했을 때 한번 다녀온 적이 있어요.
.... 생각난 김에 나도 핸폰이나 함 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