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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방

실크로드, 티벳 여행기
2002.07.19 00:25

제 2일 : 진시황능과 병마용갱

(*.77.15.29) 조회 수 1302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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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4일 화요일

새벽같이 밀려든 중국단체여행객때문에 6시쯤 눈을 떴다. 도미토리의 여러방을 차지하고는 몰려다니면서 특유의 큰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세수를 하기 위해서 샤워장에 들어갔다가 질겁을 하고 나와버렸다.

중국의 화장실 문화는 세계에서도 그 악명(?)이 자자하다. 공중화장실도 쭈그리고 앉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낮은 칸막이가 있기는 하지만 문이 달려있지 않다. 화장실 입구쪽에서보면 줄줄이 엉덩이를 까고 앉아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외국의 여행자들이 이런 화장실에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나마 공중화장실에는 칸막이라도 있지 싸구려 호텔의 화장실에는 칸막이도 없다. 그저 한쪽 구석에 구멍만 뽕! 뽕! 뚫려있을 뿐이다. 그런 화장실에서 너나나나 엉덩이를 까고 쭈그려 앉아서 서로 얼굴 처다보며 잡답을 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중국여행에 적응기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아침의 화장실 충격(??)으로 바로 배낭을 들고 체크아웃해버렸다.
"오늘 저녁은 화장실 딸린 독방을 사용하리라...."

아침식사 생각도 없어서 어제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나온 샌드위치로 간단히 떼우고 배낭은 서안역의 물품보관소에 맡겼다. 중국은행을 찾아서 어제 하지 못한 환전을 했다. 역시 여행은 호주머니가 두둑해야 흥미도 생기도 배짱도 생긴다.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고 진시황능과 병마용갱이 있다는 것을 빼고 서안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매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여행에 그만큼 심취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진시황능과 병마용이나 구경하고 빨리 떠나야겠다. 다음날 11시 30분 출발 열차를 가욕관까지 표를 끊고 306번 시내버스를 타고 병마용갱으로 향했다.

진용박물관(秦俑博物館 : 兵馬俑坑), 진시황능(秦始皇陵)
막상 버스를 타고보니 외국인은 나 혼자뿐이다. 안내서에는 1호, 2호, 3호 각기 별도의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막상 보니 한꺼번에 40위안의 입장료로 다 구경할 수 있게 되어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된 이후 30년이 다되어가도록 아직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을 정도이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만 할 것이다. 특히 1호갱은 동서길이가 230m이니 축구장보다 몇배나 큰 면적이다. 1호갱에만도 무려 6,000여 병마용이 실물 크기로 늘어서 있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나올 것만 같다. 이들 병용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고, 손에는 각기 무기를 들고 있다.

순장(殉葬)은 고대 사회에서 부족장이나 왕이 죽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매장하여, 죽어서도 생시와 같이 시중들고 생활하도록 하는 신앙적 계세사상(繼世思想)에서 비롯된 유풍이라고 한다. 즉, 종들을 함께 매장하거나, 신하나 처까지도 매장하는 일이 있었다는데 산 채로 묻거나 죽여서 매장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사람을 순장하는 것보다는 토용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순장의 시행보다는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호민·가계층과 노비·하호층사이의 노예제적인 관계가 조정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노비층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순장제가 점차 약화, 폐기되었다한다. 아무리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고 하더라도 수천명을 산채로 순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토용만으로도 그 위세를 나타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수없이 많은 실물크기의 토용을 지금처럼 기계로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일일이 손으로 제작을 했을테니....

입장시 주의사항에 갱내에서는 비디오는 물론 사진촬영이 엄격히 제한된다고 쓰여있는데 대부분 후레쉬를 펑펑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다. 그렇다면 나라고 못찍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실내가 워낙 어둡고 넓어서 후레쉬로 사진을 찍는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몇몇 병사모양의 토용은 유리상자에 진열되어있어서 반사불빛때문에 후레쉬 촬영은 불가능하다. 배낭무게때문에 삼발이를 아예 준비해가지 않았으니 사진촬영이 쉽지는 않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별도의 건물에 진열된 동으로 제작된 마차 2기였는데 그중 네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어가는 실제 크기의 절반이라고 한다. 2000년도 훨씬 전인 기원전의 용접이나 주조기술도 놀랍지만 금과 은으로 장식된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1호갱에 비해서 규모가 작은 2호 및 3호갱은 전차나 말의 비율이 높고 특히 무관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는 3호갱은 아마도 지휘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1.5Km 떨어진 진시황능을 향했다. 황제에 즉위하면서 자신의 묘자리를 파기 시작해서 천하통일후에는 약 70만명의 인원을 동원해서 왕묘공사를 했다고 한다. 특히 굴을 파고 바닥에 동(銅)을 깔고 관을 넣도록 만들었으며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만들었으며 천정에는 태양과 별 달 등의 천문도가 그려져있고, 바닥에는 수은로 강과 바다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단순한 구릉으로만 보인다. 26위안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고 오르니 계단옆에는 석류나무가 많이 심어져있고 석류꽃이 한창이다.

대여해주는 빨간 우산을 받쳐들었지만 한낮의 햇빛이 따갑다. 우리에게 진시황제는 불로초로 유명하다. 그토록 생에 대한 집착히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공포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제 아무리 천하를 통일하고 호령하던 진시황제일지라도 죽고 나면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화청지(華淸池)
서안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화청지에 들렀다. 화청지는 온천과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지만 이 단순한 온천이 이토록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당현종과 양귀비의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당시 양귀비가 온천을 했다는 해당탕(海棠湯)이라는 건물이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안록산의 난을 피해 달아나다 마외파(馬嵬坡)에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목졸려 죽었으니 난이 평정된후 사랑하는 그녀를 잊지 못해 가슴아파했다고 한다. 이런 전설적인 사랑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칠흙같은 검은 머리 옆으로 쏠려 있어
지금 막 단잠에서 깨어난 듯 하였소
꽃 수놓은 머리띠 헝클어진 그대로
정신없이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었소
산들바람이 마침 불자 선녀 옷깃이 나풀거리는 게
그 모습 완연히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가 아닐손가
옥같은 얼굴엔 시름이 한가득
배꽃 한가지에 봄비가 맺혀있듯

발견된지 2700년이 지난 지금도 43도 정도의 따뜻한 온천수를 뿜어내고 있어서 외국인들은 거의 시도하지 않지만 누구나 온천욕을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고 한다.
또한 화청지는 1936년 12월 9일의 서안사변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국민당의 지도자였던 장개석이 만주의 군벌인 장학량(張學良)에게 공산당 토벌을 명하려 왔다가 국공합작을 주장하던 장학량에게 쫓겨 이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체포되어 난징으로 후송되어 2차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직도 당시의 총탄자국이 보존되어있다고 하는데 의사소통이 되지를 않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온천을 할 수있는 준비도 전혀 되어있지도 않았지만 아침의 화장실부터 시작된 문화적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지라 그저 그늘에서 연못을 바라다보며 경치구경이나 하다 돌아섰다.

서안으로 돌아오자마자 배낭을 찾아서 하루밤에 140위안이나 하는 상덕빈관의 특실로 숙소를 옮겼다. 특실이래봐야 그리 깨끗하거나 호화롭지는 않지만 화장실이 딸려있다는 것, 한가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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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복 2002.07.19 08:50 (*.149.100.2)
    화장실의 문화적 충격...ㅋㅋㅋㅋ...
    일전에 저희 아버님도 중국여행에서 화장실때문에 상당히 괴로웠다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는것 같습니다...점점 흥미진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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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2002.07.19 09:42 (*.54.29.197)
    대 중화민국~! 유물들을 사진으로 대하니 역시 대국입니다.
    참, Dormitory는 1박에 얼마인지요~! 14위안 ?

    불편하고 불쾌하겠지만 발전이 더딘 것을 고맙게 생각할 날이 오겠지~ 요 ?
    물론, 그들의 생활문화도 원인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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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동주 2002.07.19 13:35 (*.99.21.191)
    에고 우리나라는 목재문화라 있는것 없는것 다 태워삐리고...화장실.. 거 묘하데요.. 남녀 화장실 구분만 해놨지 엉덩이와 상반신은 다 보입디다..ㅋㅋ 엉덩이 까는 순간부터 모기와의 전쟁은 필수. 화장실 문화는 인도가 좀 앞섰네요.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없어요. 대신 물동이가 있는데 완벽한 청결을 보장 합디다. 그 문화는 앞으로 자자손손 물려줄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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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이스 2002.07.19 14:21 (*.253.98.18)
    중국 다녀온 사람치고 이 화장실 얘기 안하는 사람 없드군요. 만만디...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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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한 2002.07.19 17:41 (*.230.7.58)
    앞으로 중국 여행 갈일 생기면 꼭 참고 하겠습니다.여자화장실도 마찬가지라면.ㅋㅋ~울 마눌 당장 짐싸서 한국으로 가자 그러겠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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