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에서...

by 宋梅 posted Jul 26, 200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비록 열대야라고 뜨겁다고들 하지만 오랫만에 운동이랍시고 땀을 쭉빼고나니 찬물에 하는 샤워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운동이래봐야 소위 인도어연습장이라고 하는 닭장(?)에서 작대기 휘두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박세리, 김미현덕분에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골프라는 운동이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운동이라는 인식이 나 자신을 지배하고 있으니 골프가 신명나서 치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평일에는 전혀 시간이 없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회원권도 없는 주제에 부킹전쟁을 뚫고 운좋게 주말에 골프를 칠 수 있는 행운도 거의 없는 편이다.

골프를 처음 배운 것은 16년쯤 전에 골프장이 딸려있는 부대에서 신세좋다(?)는 군의관시절에 거의 공짜로 배웠었다. 말이 장교지 직업군인이 아니니 쥐꼬리만한 봉급에 생활비도 부족할 만큼 돈이 없던 시절에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었다. 시간도 많아야하지만 경비도 엄청드는 골프를 돈없던 시절에 배웠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한달 내내 인도어와 필드를 포함 신나게 골프를 처도 월비용은 라커사용료 일금 오천원이 전부였다. 현역신분이니 그린피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개인 카트를 끌고다니니 캐디피도 들어갈 일이 없다. 그늘집에서 우동한그릇, 음료수 한병마시는 것이 비용의 전체... 그나마 관사하고 골프장하고 입구가 바로 닿아있으니 여름같으면 출근적이 9홀 한바퀴, 퇴근후에 한바퀴반...

이렇게 싸게(?) 골프를 치다가 전역을 하고나서보니 골프치는데 드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한번 필드나가는데 당시 최소 십만원... 요즘의 이십만원에 비하면 적은 액수일지라도 전임강사 쥐꼬리에서 십만원을 떼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힘이나 권력이 있는 직종이 아니니 공짜접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전무하다. 가끔 병원이나 학회행사에 골프채 들고 나가면 노교수님들 틈에서 눈치를 봐야한다. "전임강사 주제에...."

결국 애초에 부담없이 운동 그 자체로 즐기는 분위기는 없어져버리고 내호주머니 돈나가는 것 걱정이 아니면 다른 사람 눈치나 봐야하니 자연 시들해질 밖에... 직장을 옮기고나서 한때 어울려다닌 적이 있었지만 이나마 난을 시작하고나서는 일년에 한두번 골프채 끄집어내서 기름칠해두는 것이 골프하고 관련된 유일한 행사(?)인 셈이다.

하지만 오랫만에 여유있는 시간이 생겨서 골프채를 들고 닭장을 찾았지만 세상일이 어디 맘먹은데로 예전같이 될까?? 몇년만에 휘둘러보는 작대기인지라 볼은 맞추지도 못하고 땀은 비오듯하지만 이 더위에 땀을 빼는 것 그자체로 상쾌하기만 하다. 물한컵 마시고 담배한대 빼들고 의자에 앉아보니 딴에는 한가락한다는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열심히들 휘들러대고 있다.

어떤이는 타이거우즈가 부럽지 않을 만큼 깨끗한 폼으로 완벽한 샷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볼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면서 감히 왕초보 딱지도 안붙이고 열심히 폼만잡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디가가 빠지지 않는 사람들을 폼만 프로인 사람이 항상 있지만...
어떤 타석에서는 소위 레슨이라는 것을 받는 사람도 있고 몇몇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골프에 대해서 토론이 한창이다. 무릎은 이렇게해야하고, 팔목은 이렇게, 손목이 어쩌고, 어깨는 요렇게, 허리는 더 돌려야하고, 그립은 저렇게... 더 가관인 것은 자기도 잘 치지 못하면서 그래도 왕초보하나 달고와서 엉터리이론을 게거품물고 펴는 사람...

뒤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말고 배시시 웃고 말았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비슷비슷한지...
난을 시작하고서도 혼자서 베란다에 중국란 몇개 놓고서 죽지않고 잘 자라는지 그저 노심초사하다고 꽃이라도 필라치면 온 세상이 다 내것처럼 보이고 이제 난은 완전히 마스터한 것처럼 흐뭇해하기도 했었다. 조금 더 오래했답시고 고수반열에 끼여서 햇빛은 요렇게, 통풍은 조렇게, 시비가 어쩌구, 농약이 저쩌구, 온도, 습도 등등등등.... 나도 저렇게 보였겠지...ㅎㅎ

그래도 골프라는 것은 필드나가서 맛대결을 하면 승부가 확실하다. 가끔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소리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잘 안되는 날 자기최면을 위한 위안의 한 방편에 불과하고 결국 스코어가 그날의 승부를 좌우하니까... 하지만 난은 승부도 나지 않는다. 그저 침튀기며 니가 잘한다, 내가 잘한다, 내가 해보니 이러더라,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게다... 기껏 차이가 있는 것같아 비교를 해볼라치다가도 서로의 취향과 선호도가 다르니 "나는 이게 좋더라"하면 다시 무승부... 하산해서 니가 장원이다 내가장원이다 따지기도 하지만 그저 산이 좋아서 운동삼아 땀흘리러 왔다는 핑계는 빈손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최면...

골프는 혼자서 하는 운둥이 아니다. 결국 누군가와 어울려하는 운둥이고 난은 따지고 보면 혼자서 하는 취미생활이다. 골프에서도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은 기피하게 된다. 하물며 난은 두말하면 잔소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애란생활이라면 더욱 더 좋겠지만...
결국 작은 것에 만족하고 분에 넘치지 않는 절제된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서든 무엇에서든 필요한게 아닐까...

좌우간 그나마 할 수 있는 운동이 거의 없으니 당분간 닭장이라도 열심히 다녀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