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왜 키우는지도 모르면서...........

by 월곡 posted Jun 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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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년전 영광원자력발전소 현장 검사관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무실 일도 재미가 없고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다보니 싫증도 나서 현장근무 자원을 했었지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진급을 위해 본부에서 점수관리에 신경을 써야할 때였지만 왠지 그런데에 억메이는 것도 싫어서 자원을 하여 지방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내가 팀장이라 보기싫은 윗사람들 얼굴이 보이질 않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밤늦게까지 눈치보고 앉아있지 않아도 되고 자리를 좀 비워도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으니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바로 이웃집에 난을캐러 다니는 선배 한분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의 성화때문에 산에 따라 다니며 난을 캐다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분도 그 때 막 난을 배우려고 하던 참에 나를 만나게 되어 나를 적극적으로 포섭을 했었지요.

그러고 보니 그때만 해도 내가 30대였었군요.ㅎㅎㅎ
영광에는 2년 3개월 정도 살았습니다.

난을 캐러다니면서 부터는 술이나 테니스, 골프 같은 다른 스포츠에도 관심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워낙 고스돕이나 장기, 바둑, 낚시 등에도 별로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난을 만난 후로는 지금까지 난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말이면 난을 캐러 산에 가고 주중에 직장에 갔다 돌아오면 난을 들여다 보면서 삽니다.
왜 그러는지 잘 모르지만 그게 취미가 된 모양입니다.
다른 얘기를 할 때면 금방 싫증이 나고 재미가 없지만 난이야기를 하는 것은 들어도 들어도 재미가 있으니 난을 좋아하기는 좋아하는 것이겠지요.

지금은 퇴직을 하고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그 전 직장은 일이 좀 바쁘고 마음에 여유들이 없어서인지 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가끔 둘이 난담을 나누곤 했으나  서로 바쁘게 사니 그것도 가끔 만날 수 밖에 없었구요.
사는 동네에도 별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난우회에도 가입해본 일이 없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영광에 난을 캐러 갔다가 오랫만에 나에게 난을 만나게 해 준 우리 이웃에 살던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직장에서 5-6년전에 정년퇴직을 하였고 아이들을 상대로 바둑교실 선생으로 일하면서 낚시를 하러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난은 안키워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광주에 아파트로 이사한 후로 난이 시들시들해져서 다 정리해부렀어.
아파트에서는 난이 잘 안되데야."

그래서 나는

"우리집도 아파트지만 그런데로 잘 자라든디요.
그 때 여기에서 살 때 산에 다니면서 캔 난들이 이제 베란다에 가득 찼어요.
그럼 요즘 난을 안키우면 뭘 하고 사세요?"

"으응 요즘은 낚시하로 댕게
낚시계에서는 유명해져서 나 몰르는 사람이 밸로 없어"

"그래요. 잘 하셨네요. 뭐든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면 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