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스트레스

by 宋梅 posted Nov 1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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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형두통과 어깨통증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40대 노처녀 환자가 하나 있다.
한달에 한두번, 많을때는 서너번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
"스트레스하고 운동부족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이다.
"운동은 많이 하는데...."
말꼬리를 흐린다.
"스트레스는?"
"...."


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가지 자극이 있다.
이 자극은 인간의 오감을 통해서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몸에 전달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서 부터 즐거운 음악소리처럼 가볍고 즐거운 자극이 있는가 하면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는 심한 자극도 있다.
주변의 갑작스런 죽음이나 이별, 본인의 실직, 이혼 처럼 구체적인 오감의 형태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변화도 자극으로 전달된다.
이런 자극은 긴장감을 극에 달하게 하고 이런 과도한 긴장감을 흔히 스트레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적당한 자극들은 우리몸에 적당한 긴장상태를 유지시키고 활력을 가져온다.
이런 자극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지원자 몇명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아무런 소리도 시각적인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실험을 했던 결과를 보면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시각적 변화가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었다.
외부의 자극이 전혀없는 상태이다보니 무기력증을 일으키고 아무런 의욕도 활력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쥐실험에서보듯 소식하고 배고픈 쥐가 살찌고 배부른 쥐보다 훨씬 더 활동적인 것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셈이다.
다만 이자극을 어떤 형태로 어느정도 유지하는게 적당한가 하는 것은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번지점프처럼 강한 자극을 즐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북한의 김정일처럼 고소공포증 또는 비행공포증으로 비행기도 못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가 스트레스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시 새로운 무엇인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과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먹을 수록 떨어지는 적응력을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변화를 두려워한다, 아니 두려워하다 못해 회피하게 된다.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비관론자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위험부담이 따르는 만큼 낙관론자들은 실패를 많이 한다.
결국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셈이다.

변화무쌍한 사람을 보면 변덕이 심하다고 한다. 변덕이 심한만큼 한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고 한다. 반면 변화가 없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발전하는 현대과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전자제품은 새로운 것일수록 좋다. 하지만 골동품이나 문화재는 오래된 것일 수록 좋다.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면서도 깊이를 갖추기는 쉽지않다.
어떻게 하면 발전을 추구하고 변화를 모색하면서도 깊이를 갖출수 있을까?

10년넘게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시작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나보다.
여행다녀오고 준비한 시간까지 합산하면 일년반이 걸렸다.
오랜동안 몸에 베어있는 봉급장이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헤메었으니 아직도 버려야할 것은 많다.
스트레스를 소화해내는 능력도 더 필요하고...

하필이면 불경기가 겹치는 바람에 기대치에는 훨씬 못미치고 있지만 그럭저럭 꾸려는 나가고 있다.
어차피 목욕탕업(??)이 아니니 떼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은 사주팔자에 없었다.
그저 빚지지않고 가족들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으면 만족해야하는 것이 불경기때의 생존수단일 것이다.

오늘은 내딴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도 노처녀 환자가 먼저 농담을 건넨다.
"오늘은 원장님이 스트레스가 많으신가봐요..."
"왜요??"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높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