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중의 하나는 아내의 서랍을 뒤져보는 것이다.
우리집 안방엔 3단 서랍장이 하나있고
맨 아래쪽 서랍은 아내의 모든 잡다한 기물이
차곡차곡 정리되있다.
나는 잠시 스토커가 되어 내가 모르는 아내의 비밀을
캐내보기 위해 그 서랍장에 손을 대보는 것인데;;
솔직히 십년을 부부로 살아 오면서;;
아내의 왼쪽 궁둥이에 점 하나며
오른족 가슴 아래의 작디 작은 흉터까지 속속들이
파악한 상태지만;;
내가 모르는 아내의 내면도 존재함이 분명해서
가끔은 어깨 너머로 들여다 보고픈 심정이다.
모든 이런 행위는 물론 아내의 부재시에 이루어짐이 당연하고,
가끔은 아들녀석을 망보라고 시키기도 한다.
초딩 3학년의 아들녀석은 나의 말잘듣는 꼬봉이 된지 오래.
지 엄마 몰래 녀석에게 나는 일주일에 이천원을 쥐어주고
내가 시키는 모든 심부름을 엄마보다 우선순위로
해주기로 장기계약에 들어갔었다.
아들녀석은 용돈이외의 부수입에 매우 즐거워했고,
자기도 `원조교제`한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돈버는 방법을 알아버린 아들.
대견하다.
아내의 서랍속엔 이런 것들이 들어차 있다.
쓰다만 화장품류,구급약 상자,각종 세금고지서,
생리대,(첨엔 화장진줄 알았다.),액세서리들,
아들이 그동안 받아온 상장들,그리고.....
한귀퉁이에 가로세로 20cm* 정도의 작은 상자하나.
그 상자는 아내가 제일 아끼는 것으로서;;
이따금씩 상자를 꺼내어 안에든 내용물을 살펴가며
빙그레 아내는 미소짓곤 했다.
언젠가 나는 그 상자를 열어보고
잠시 동안을 침묵하다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아내라는 여인을 운명처럼 만나 것에 대하여;;
신께 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년 *월 *일
나의 첫 직장은 화곡동에 위치한 현대약품이었다.
아내를 만나 처가집의 반대로 동거를 시작한 곳은
서울 외곽의 변두리였으니;;
왕복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라는,
엄청난 고생을 감수해야 헀다.
당연히 돈이 후달렸다는 이유때문이었고;;
변두리의 방값도 모자라 7백 보증금에 월 8만원으로
우리의 삶은 시작되었다.
새벽 5시면 스물세살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풍 존나 심한 한겨울의 방안은 냉장고 같았고,
아내는 생전 물한방울 튀기지 않던 손으로
한평정도의 좁아터진 부엌으로 조용히 나가 아침을 지었다.
전기밥솥 하나 살 능력이 없다는데에
나는 무척 아내에게 미안해 햇고;;
회사 입사한지 2개월 밖에는 안된 수습기간 이었으므로,
수입이 좋았을리 없었다.
추운 방안에서 내가 아침을 먹고 있으면,
아내는 부엌으로 나가 연탄 보일러 통앞에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다.
아내가 뭐하나,한번 보았더니;;
보일러 뚜껑위에 내 구두 한켤레를 올려 놓고 뎁히고 있던중.
" 날이 많이 차요! 구두좀 따뜻이 해놓으려고요!"
타면 큰일이라 지키는 거라며;;
계면쩍게 웃는 저 여인이 내 아내라니....
처음 접하는 그런 기분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목이 메어와 몃술갓 뜨다 말았었던 그날은
하루종일 함박눈이 존나 내렷던 기억과 함께 늘 새롭다.
나는 그날 밤 퇴근길에
한달 차비와 식대값을 빼고
모든 돈을 탈탈 털어;;;아내에게 줄 십만원짜리
보석반지 하나를 샀다.
갑작스레 시작한 동거였고,
아내에게 정표하나 해주지 못했기에..
아내는 그날밤 조금 울었다.
건네준 반지를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좁은 방의 유일한 세간살이였던
3단 서랍장을 열고;;
작은 나무상자 하나에 반지를 조심스레 넣었다.
" 왜?? 손에 끼고 있지? "
내가 물었고,아내는 내 옆에 가만히 누으며 도리질했다.
" 너무 소중해요.잊어 먹으면 절망일꺼에요
...두고 두고 보고 싶을때만 나혼자 몰래 꺼내 볼거에요! "
첫 월급명세서를 갖다 주었을 때도 아내는 기쁘게
상자에 넣었고,
지수를 가졋음을 알았을때 병원에서 받아든 육아수첩도
상자에 넣었으며,
내가 우수직원으로 뽑혀 제주도를 갖다올때;;
아내에게 사다준 엄지손가락 만한 돌하루방도 상자에 넣었었다.
십년이 지나도록 한가지씩 아내의 상자속에 쌓여가는
물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들 태반이지만,
아내는 행복을 하나씩 수집하는 기쁨이었으리라.
아내와 십년을 살아왔지만,
지금도 매달 25일이 되어
급여명세서를 아내에게 내밀면 아내는
순진한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한달간 수고하셧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내의 상자속에 백 몃십장의 급여명세서가 쌓여 갈수록
나의 미안함은 깊어만 간다.
10월 3일 개천절 날은,
우리가 동거를 끝내고 결혼한 날.
더욱 잘해주지 못하고
더욱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결혼 10주년의 밤에 사죄해야지!
아내는 그러면 이럴지도 몰라!
" 나한테 잘해요, 죽는 날까지..."
이것이 바로 작은 행복이다
우리집 안방엔 3단 서랍장이 하나있고
맨 아래쪽 서랍은 아내의 모든 잡다한 기물이
차곡차곡 정리되있다.
나는 잠시 스토커가 되어 내가 모르는 아내의 비밀을
캐내보기 위해 그 서랍장에 손을 대보는 것인데;;
솔직히 십년을 부부로 살아 오면서;;
아내의 왼쪽 궁둥이에 점 하나며
오른족 가슴 아래의 작디 작은 흉터까지 속속들이
파악한 상태지만;;
내가 모르는 아내의 내면도 존재함이 분명해서
가끔은 어깨 너머로 들여다 보고픈 심정이다.
모든 이런 행위는 물론 아내의 부재시에 이루어짐이 당연하고,
가끔은 아들녀석을 망보라고 시키기도 한다.
초딩 3학년의 아들녀석은 나의 말잘듣는 꼬봉이 된지 오래.
지 엄마 몰래 녀석에게 나는 일주일에 이천원을 쥐어주고
내가 시키는 모든 심부름을 엄마보다 우선순위로
해주기로 장기계약에 들어갔었다.
아들녀석은 용돈이외의 부수입에 매우 즐거워했고,
자기도 `원조교제`한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돈버는 방법을 알아버린 아들.
대견하다.
아내의 서랍속엔 이런 것들이 들어차 있다.
쓰다만 화장품류,구급약 상자,각종 세금고지서,
생리대,(첨엔 화장진줄 알았다.),액세서리들,
아들이 그동안 받아온 상장들,그리고.....
한귀퉁이에 가로세로 20cm* 정도의 작은 상자하나.
그 상자는 아내가 제일 아끼는 것으로서;;
이따금씩 상자를 꺼내어 안에든 내용물을 살펴가며
빙그레 아내는 미소짓곤 했다.
언젠가 나는 그 상자를 열어보고
잠시 동안을 침묵하다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아내라는 여인을 운명처럼 만나 것에 대하여;;
신께 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년 *월 *일
나의 첫 직장은 화곡동에 위치한 현대약품이었다.
아내를 만나 처가집의 반대로 동거를 시작한 곳은
서울 외곽의 변두리였으니;;
왕복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라는,
엄청난 고생을 감수해야 헀다.
당연히 돈이 후달렸다는 이유때문이었고;;
변두리의 방값도 모자라 7백 보증금에 월 8만원으로
우리의 삶은 시작되었다.
새벽 5시면 스물세살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풍 존나 심한 한겨울의 방안은 냉장고 같았고,
아내는 생전 물한방울 튀기지 않던 손으로
한평정도의 좁아터진 부엌으로 조용히 나가 아침을 지었다.
전기밥솥 하나 살 능력이 없다는데에
나는 무척 아내에게 미안해 햇고;;
회사 입사한지 2개월 밖에는 안된 수습기간 이었으므로,
수입이 좋았을리 없었다.
추운 방안에서 내가 아침을 먹고 있으면,
아내는 부엌으로 나가 연탄 보일러 통앞에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다.
아내가 뭐하나,한번 보았더니;;
보일러 뚜껑위에 내 구두 한켤레를 올려 놓고 뎁히고 있던중.
" 날이 많이 차요! 구두좀 따뜻이 해놓으려고요!"
타면 큰일이라 지키는 거라며;;
계면쩍게 웃는 저 여인이 내 아내라니....
처음 접하는 그런 기분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목이 메어와 몃술갓 뜨다 말았었던 그날은
하루종일 함박눈이 존나 내렷던 기억과 함께 늘 새롭다.
나는 그날 밤 퇴근길에
한달 차비와 식대값을 빼고
모든 돈을 탈탈 털어;;;아내에게 줄 십만원짜리
보석반지 하나를 샀다.
갑작스레 시작한 동거였고,
아내에게 정표하나 해주지 못했기에..
아내는 그날밤 조금 울었다.
건네준 반지를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좁은 방의 유일한 세간살이였던
3단 서랍장을 열고;;
작은 나무상자 하나에 반지를 조심스레 넣었다.
" 왜?? 손에 끼고 있지? "
내가 물었고,아내는 내 옆에 가만히 누으며 도리질했다.
" 너무 소중해요.잊어 먹으면 절망일꺼에요
...두고 두고 보고 싶을때만 나혼자 몰래 꺼내 볼거에요! "
첫 월급명세서를 갖다 주었을 때도 아내는 기쁘게
상자에 넣었고,
지수를 가졋음을 알았을때 병원에서 받아든 육아수첩도
상자에 넣었으며,
내가 우수직원으로 뽑혀 제주도를 갖다올때;;
아내에게 사다준 엄지손가락 만한 돌하루방도 상자에 넣었었다.
십년이 지나도록 한가지씩 아내의 상자속에 쌓여가는
물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들 태반이지만,
아내는 행복을 하나씩 수집하는 기쁨이었으리라.
아내와 십년을 살아왔지만,
지금도 매달 25일이 되어
급여명세서를 아내에게 내밀면 아내는
순진한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한달간 수고하셧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내의 상자속에 백 몃십장의 급여명세서가 쌓여 갈수록
나의 미안함은 깊어만 간다.
10월 3일 개천절 날은,
우리가 동거를 끝내고 결혼한 날.
더욱 잘해주지 못하고
더욱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결혼 10주년의 밤에 사죄해야지!
아내는 그러면 이럴지도 몰라!
" 나한테 잘해요, 죽는 날까지..."
이것이 바로 작은 행복이다
후~~~~~~~~~~~우~~~~~~~~~!
작을 것 같은...
아주 커다란 행복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