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광화문에 위치한 실내악 전문 연주홀인 금호아트홀측에서 인터뷰를 요청을 받았었습니다.
진즉부터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고만고만 사양을 하다가 어느 날 또 다시 요청을 받은 후 생각이...
음~ 인터뷰를 해~?.
내 생에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라는 긍정정인 생각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금호아트홀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10월~12월호 책자와 인터넷 웹에 이렇게 실렸네요.
담당자인 이지영씨와 차 한 잔을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
아래 내용중 동양란을 키우다 보니 300여 분이 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부분입니다.
80년 중반 과장 진급 때 거래처(?)에서 받은 축하화분 동양란 관음소심의 청향에 매료되어 동양란을 키우다가
여백의 미가 극치인 한란의 매력에 빠져 제주 한란을 4~5십 분을 애지중지 배양하다가
다시 우리 춘란에 빠져 자생춘란 채란한답시고 남녘 산들을 헤집고 다니길 이십여 년...
2001년 5월 어느 날, 후배가 보여주는 풍란 [옥금강]사진을 보고 다시 풍~~덩~
급기야 옥상에 10평 쯤되는 온실을 짓고...
어느 새 풍란은 천 여분을 훨씬 넘겨...
그 때부터 풍란 기르기는 취미가 아니라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데...
제 생애 인터뷰는 이번 포함 3번인 것 같습니다.
2번은 직장 재직중에 어항지와 건설 관련 협회지에...
참, 어제 토요일 인수봉 [은정 길]이라는 난이도가 엄청 쎈 코스를 등반했는데 추워 죽는줄 알았습니다.
낮기온이 20도를 넘겠다는 일기예보만 생각하고 여름 팬츠에 가볍고 바람 기가막히게 잘 통하는 엷은 셔츠 하나를 입고 갔거든요.
인수봉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 바람이 어찌나 매섭든지요.
근 일년만에 오른 암벽등반이 힘든게 아니라, 4시간 넘게 절벽에 매달려 오돌돌~~~ 떠는 게 더 죽을 맛이었습니다.
배낭에 바람막이는 준비해 갔지만 하도 햇살이 좋아 안 입고 올라갔거든요.(바보~~맹추~~)
인터뷰 전 날, 술을 꼭지가 돌기 직전까지 마셔 그 때까지도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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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하루재 길...
등반 시작 전엔 이렇게들 웃습니다.
제가 추워 어찌나 떨든지 2피치에서 함께 기다린 동료가 껴안아 주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셔츠에 우무복 그리고 고어텍스 자켓으로 무장.
나는 달랑 티 셔츠 한 장.
위에서 사진을 찍는 것 같아서 일그러진 인상을 펴고 웃음을...
등반사진들 웃는 사진은 100 % 연출입니다. 어떠한 고수일지라도 모두 다~~
오랜만에 등반을 한지라 근육이 안 생겨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위에서 빌레이를 잘 해주기에 오르다 말고 절벽에서 사랑한다고 하트 마크를 해 주고 있는 광경입니다.
휴~~ 드디어 하강입니다.
브람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77
전악장 이어듣기 (40 :56) I. Allegro Non Troppo (22:37) II. Adagio (09:52) III.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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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람스가 이 작품을 4악장으로 쓰려고 하다가 결국은 3악장으로 작곡하였는데 먼저 제1악장의 독주 바이올린 파아트를 요아킴에게 보내어 그에 대한 비판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아킴의 조언과 충고를 최소한으로 들었을 뿐 거의 브라암스의 독자적인 생각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기보다 는 바이올린 독주부를 가진 하나의 교향곡이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아뭏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1908-1974) 러시아 우크라이나 소련의 바이올린 연주자. 흔히들 야사 하이페츠의 등장을 '재래(再來)라고들 말한다. 이 '재래'란 말을 그냥 평범하게 풀어 버리면 별 말은 아니다. 그냥 다시 온 것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용례를 살펴보면 그것은 하이페츠를 신격화하는 의미까지 들어 있는 말이다.
예수 재림에 버금간다는 말이 된다.하이페츠는 누구의 재래였을까 파가니니, 아니면 과연 누구일까? 하이페츠의 등장으로 당대의 많은 바이올린 주자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독설가로 이름높았던 버나드 쇼 조차 하이페츠의 19세 되던 1920년, 런던 데뷔무대를 보고 그에게 편지를 보내 '제발 잠들기 전 기도 대신 아무곡이나 서툴게 연주해라 인간으로 태어나 그렇게 신처럼 완벽하게 연주하다간 자칫 하느님의 시기로 요절할지도 모른다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역시 그의 스승 스톨랴르스키를 통하여 유명한 ' 아우어파'라는 전통를 계승하였으며 전통의 단순한 반복이 아닌 '신 아우어파' 라 불리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 해냈는데, 전통의 화려한 기교위에 누구보다도 따뜻한 음색과 깊은 음악적 표현으로 특별한 감동을 듣는 사람에게 주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그의 팬들이 아직도 그의 음반에 실린 그 주옥같은 감동의 순간 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시리즈를 끝내며 다시한번 토스카니니가 한 말로 끝을 맺고 싶다. 만약 오이스트라흐가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세계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는 태양 앞의 별처럼 그 빛을 잃을 것이다
참고로 위에 옥금강 사진 관련 후배는 바로 송매님입니다.